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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명 수몰 조세이 탄광, 83년 만의 유골

1942년 일본 야마구치현 조세이 탄광에서 해저 갱도가 무너져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광부 183명이 바닷속에 갇혀 숨졌습니다.
일본 당국은 구조 대신 갱도 입구를 막아버렸고, 사건은 49년 동안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991년 일본인 교사의 기록 발굴로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발생 83년 만인 2025년 8월에야 해저에서 유골이 처음 수습됐고, 2026년 1월 한일 양국이 DNA 감정 협력에 합의하면서 신원 확인 절차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방송 정보

채널: SBS
방영일: 2026년 9월 10일(목) 밤 10시 20분
코너명: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검은 뼈 - 49년 만에 전해진 부고' 편
출연: 배우 변요한, 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가수 김종서

조세이 탄광 사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30년대 후반 일제는 한반도의 청년들을 강제로 동원했습니다.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 탄광에도 조선인 노동자들이 끌려와 수용됐습니다.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해저 갱도에 들어가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탄광 주변에는 높은 울타리와 감시 초소, 탈출을 막기 위한 전기선까지 설치돼 있었습니다.
1942년 2월, 갱도에는 평소보다 많은 바닷물이 계속 새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중 석탄 증산 압박에 밀려 작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반을 지탱하던 석탄 기둥, 이른바 '탄주'까지 캐냈다는 사실이 훗날 드러났습니다.
결국 바다 밑 갱도 천장이 무너지며 바닷물이 밀려들었습니다.
작업 중이던 광부 183명이 그 자리에서 갇혔습니다.

1942년 조세이 탄광 사고로 숨진 광부는 183명이며, 이 가운데 일부 유골은 사고 발생 83년 만인 2025년 8월에야 처음 발견됐습니다.

왜 49년 동안 아무도 몰랐나요
사고 직후 일본 헌병대가 취한 조치는 구조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갱도 입구를 판자와 각목으로 봉쇄해버렸습니다.
유족들은 가족의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가수 김종서는 방송에서 "전쟁에 몰두한 나머지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갱도 입구가 열리는 순간, 피고름이나 눈물 이런 것들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며 참담한 심경을 전했습니다.
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은 밀폐된 해저 갱도의 작업 환경을 두고 "내가 폐소공포증이 없는데도 생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봉쇄 조치 때문에 사건은 공식 기록 없이 49년 동안 묻혀 있었습니다.

49년의 침묵을 깬 일본인 교사
변화는 1991년, 일본의 한 고등학교 교사 다케노부 야마구치가 과거 탄광 사택을 방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우연히 알게 된 뒤 일본 시민들과 함께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모임은 사찰에 남아 있던 창씨개명 사망자 명부를 근거로 100통이 넘는 편지를 발송했습니다.
이 가운데 17통의 답장이 돌아오면서, 약 50년 만에 일부 유족들이 가족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한일 합동 추도식이 열렸고, 희생자들의 본명을 새긴 추도비도 세워졌습니다.
이 시민모임의 기록은 훗날 갱구 재개방과 유골 수습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유골은 어떻게, 언제 발견됐나요
봉쇄됐던 갱구는 2024년 9월, 사고 발생 82년 만에 다시 열렸습니다.
이듬해인 2025년 8월, 한국인 잠수사들이 실제로 해저 갱도에 진입했습니다.
83년간 바닷속에 잠겨 있던 유골은 검게 변색된 상태로 확인됐습니다.
2026년 1월에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발견된 유골의 DNA 감정에 양국이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 이후 신원 확인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다만 정확한 신원 확인이나 남아 있는 유해의 규모, 추가 발굴 계획은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즉 83년 만의 유골 수습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신원 확인이라는 다음 단계의 시작'에 가깝습니다.

1942년 당시와 2026년 현재, 무엇이 달라졌나요
사고 이후 83년이 지나는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 항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분 1942년 사고 당시 2026년 현재까지 진전


진상 규명 헌병대가 갱도 입구를 봉쇄, 조사 없이 사건을 덮음 일본 시민모임의 기록 발굴로 사고 경위가 상당 부분 확인됨
유족 확인 생사 확인 자체가 불가능했음 17통의 답장으로 약 50년 만에 일부 유족이 사망 사실을 확인
유골 수습 수습 시도 없이 갱도가 그대로 방치됨 2025년 8월 한국인 잠수사가 투입돼 유골이 처음 발견됨
공식 협력 한일 양국의 공식 협력 없음 2026년 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DNA 감정 협력 합의, 신원 확인 진행 중

방송은 이 사건을 어떻게 전했나요
방송에서 사건 전모를 접한 변요한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희생자들의 고통과, 이를 밝히기 위해 나선 일본 시민들의 노력을 함께 짚었습니다.

"양심, 사명감, 부끄러움을 아는 일, 그리고 일본 시민들의 사죄의 말까지, 모두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 발언은 가해국 시민 개개인의 양심적 행동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짚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박태환 역시 "더 늦기 전에 하루빨리 남은 유골들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소신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사건 한눈에 보기


시점 주요 내용


1942년 2월 조세이 탄광 해저 갱도 붕괴, 광부 183명 수몰
1991년 일본인 교사 다케노부 야마구치가 사건 재조명, 시민모임 결성
2024년 9월 사고 82년 만에 봉쇄됐던 갱구 재개방
2025년 8월 한국인 잠수사들이 해저 갱도에서 유골 첫 발견
2026년 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유골 DNA 감정 협력 합의
2026년 9월 10일 SBS '꼬꼬무'에서 사건 조명, 변요한·박태환·김종서 출연

결론: '꼬꼬무' 조세이 탄광 편의 사실관계가 궁금하시다면, 1942년 183명이 희생된 수몰 사고, 이를 밝혀낸 일본 시민들의 49년에 걸친 노력, 그리고 2025년 유골 발견 이후 지금도 진행 중인 DNA 감정 절차, 이 세 갈래를 함께 기억해두시면 방송 내용을 가장 입체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기록, 관련 국내 언론 보도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