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법정 기준보다 훨씬 얕은 해저 37미터 지점까지 무리하게 뚫은 갱도가 무너지면서 일어났습니다.
바닷물이 밀려든 뒤 탄광 측이 2차 붕괴를 막겠다며 갱도 입구를 폐쇄해, 입구까지 살아서 헤엄쳐 나온 사람들까지 그대로 수장됐습니다.
희생자 183명 중 136명이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였고, 사고 직후에는 "대부분 구조했다"는 식으로 축소 보도되며 진상이 오랫동안 감춰졌습니다.
83년이 지난 2024년 9월 잠수 조사로 막혀 있던 갱도 입구가 다시 확인됐지만, 신원 확인과 유골 수습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해저 37미터, 법정 기준을 넘어선 굴착
조세이 탄광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 밑 석탄층을 캐는 해저 탄광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법정 안전 기준은 해저 갱도가 일정 수심 이상을 확보하도록 정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세이 탄광은 이 기준보다 훨씬 얕은 해저 약 37미터 지점까지 갱도를 뚫었습니다.
수익성을 높이려고 안전 기준을 무시한 채 채굴 범위를 넓힌 결과였습니다.
이곳으로 동원된 조선 청년들은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좁은 갱도에서 하루 12시간씩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강제로 끌려온 사실조차 가족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노동에 투입됐다고 전해집니다.
바닷물이 솟구치던 순간
사고 당일, 얇게 남아 있던 해저 갱도의 천장이 바닷물의 무게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순식간에 바닷물이 갱도 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갱 안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들은 대피할 틈조차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부는 필사적으로 물살을 헤치고 입구 쪽으로 헤엄쳐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구조 대신 입구를 막아버린 선택
여기서 사건의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탄광 회사는 추가 붕괴, 즉 2차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갱도 입구를 폐쇄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입구 근처까지 나온 생존자들마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수장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구조보다 시설 보호가 먼저였던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고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참사'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구분 사고 직후 알려진 내용 이후 조사로 밝혀진 사실
사망자 규모 정확한 인원 비공개 183명 사망, 이 중 조선인 136명
구조 상황 현지 신문 "배수 작업으로 대부분 구조" 2차 사고 우려로 갱도 입구 폐쇄, 생존자까지 수장
사고 원인 불가항력적 해저 사고로 알려짐 법정 기준보다 얕은 해저 37m 지점까지 무리하게 굴착해 발생
유골 수습 사실상 방치 2024년 9월 잠수조사로 갱도 입구 확인, 수습 논의 진행 중
사고 희생자 183명 가운데 136명, 전체의 약 74%가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였습니다.
1991년 유족과 시민단체의 진실 규명 요구가 시작된 뒤, 실제 잠수 조사로 갱도 입구가 재확인되기까지 33년이 걸렸습니다.
축소되고 지워진 참사
사고 이후 지역 신문에는 "배수 작업 등 응급조치를 취해 갱내 작업자 대부분을 구조했다"는 취지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입구를 막아 생존 가능성이 있던 사람들까지 잃은 뒤였습니다.
이렇게 사고의 규모와 진상은 오랫동안 축소되고 감춰진 채로 남았습니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은 정확한 사망자 수조차 오랜 시간 알지 못한 채 지내야 했습니다.
피해 규모가 제대로 알려진 건 사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83년 만에 열린 진실의 문
1991년부터 일본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꾸준히 유해 수습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2024년 9월, 옛 갱도 지도와 생존자 증언을 토대로 한 잠수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이 조사를 통해 오랫동안 막혀 있던 갱도 입구가 다시 확인됐습니다.
지금도 조세이 탄광이 있던 바다에는 당시 사용되던 환기구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136명의 조선인 희생자 중 신원이 확인된 이는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원 확인과 유골 수습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은 유골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방송에 출연한 박태환은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도 모른 채 83년을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이름을 찾아드리고 싶습니다."
유족들이 수십 년간 품어온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이야기는 2026년 9월 10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검은 뼈 - 49년 만에 전해진 부고' 편에서 다뤄졌습니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가수 김종서, 배우 변요한이 출연했습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장도연, 장성규, 장현성도 함께했습니다.
출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결론: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무리한 굴착과 구조 포기가 겹쳐 만들어진 인재였습니다.
83년이 지난 지금도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가 많으니, 관련 유골 수습과 진상 규명 소식을 계속 지켜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