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183명 수장된 바다 밑 갱도, 83년 만에 드러난 검은 뼈

직답 요약: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해저 탄광 갱도가 무너지면서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그대로 바닷속에 갇혀 숨진 사건입니다.
회사는 2차 붕괴를 막는다는 이유로 사고 직후 갱도 입구를 막아버렸고, 그 때문에 시신 수습이 아예 불가능해졌습니다.
사건은 1991년 한 일본인이 보낸 편지로 49년 만에 한국에 알려졌고, 2025년 8월에는 83년 만에 유골 일부가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2026년 2월 추가 조사 중 잠수사가 숨지는 사고가 겹치면서, 지금은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절차가 잠정 중단된 채 멈춰 있습니다.

방송정보

채널: SBS
방영일: 2026년 9월 10일(목) 밤 10시 20분
코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 '검은 뼈, 49년 만에 전해진 부고' 편
출연: 장도연·장성규·장현성(진행), 박태환·김종서·변요한(이야기 친구)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바다 밑에서 벌어진 사고
조세이 탄광은 갱도가 바다 밑으로 뻗어 있는 해저 탄광이었습니다.
1942년 2월 3일, 갱도 천장이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순식간에 밀려 들어왔습니다.
당시 갱도 안에는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총 183명이 작업 중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된 조선인들은 대부분 강제동원으로 끌려온 이들이었습니다.

1942년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로 183명이 사망했고, 이 중 136명이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였습니다. 사고 후 83년이 지난 2025년 8월에야 유골 일부가 처음 발견됐습니다.

회사가 입구를 막으며 시작된 은폐
사고 직후 회사는 추가 붕괴와 침수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갱도 입구를 시멘트 등으로 막아버렸습니다.
이 조치로 희생자들의 시신 수습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일본 정부와 회사 어느 쪽도 정확한 사망자 명단이나 사고 경위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49년 만에 날아온 편지 한 통
사고가 세상에 다시 알려진 계기는 뜻밖에도 일본인의 편지였습니다.
1991년, 야마구치 다케노부라는 일본인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찾아주려는 목적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이 사고를 알게 됐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지 49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한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진상 규명과 유해 발굴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유해라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야 이 사고가 비로소 끝나는 겁니다." - 유해발굴 공동조사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

83년 만에 떠오른 검은 뼈
한일 공동 조사단은 2025년 수중 탐사를 통해 실제 유해 확인에 나섰습니다.
2025년 8월 25일, 수심 약 43미터 바다 밑에서 대퇴골로 추정되는 뼈 조각들이 처음 발견됐습니다.
다음 날인 8월 26일에는 두개골도 함께 발견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검게 변한 뼈는 이 사고가 그동안 얼마나 오래 방치돼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유해 발굴을 가로막은 또 다른 죽음
2026년 2월, 유골을 추가로 인양하기 위한 잠수 조사가 다시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만 출신의 57세 잠수사가 잠수 작업 중 의식을 잃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후 유해 발굴 일정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사고 발생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다른가요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사고 직후'와 '83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비교 항목 1942년 사고 직후 2026년 현재


유해 상태 갱도 입구 폐쇄로 수습 자체가 불가능 대퇴골·두개골 등 일부 유골 실물 확인
사고 인지도 회사·정부 모두 경위를 밝히지 않아 방치 한일 공동조사단이 공식적으로 조사 진행
신원 확인 명단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음 DNA 감정 협력을 정부 간 논의 중
발굴 작업 시도 자체가 없었음 잠수사 사망으로 안전 문제 부각, 잠정 중단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요
현재 한국과 일본 정부는 발견된 유골에 대한 DNA 감정 협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신원이 확인되면 유가족에게 통보하고 유해를 인도하는 절차가 뒤따를 예정입니다.
다만 잠수사 사망 사고 이후 안전 대책 마련이 우선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추가 발굴 재개 시점은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사건이 지금도 중요한 이유
조세이 탄광 사고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 발굴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규모 수몰 사건입니다.
국내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해외에 남아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는 여전히 많습니다.
이번 사례는 그중 일부가 83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드문 경우입니다.
그래서 DNA 감정과 발굴 재개 여부가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83년 전에 끝난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도 신원 확인과 유해 송환 절차가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 사안이므로, 이 사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일 정부의 DNA 감정 협력 발표와 유해 발굴 재개 여부를 꾸준히 지켜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출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context": "https://schema.org",
"@type": "FAQPage",
"mainEntity": [
{
"@type": "Question",
"name":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났나요?",
"acceptedAnswer": {
"@type": "Answer",
"text":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있던 조세이 탄광의 해저 갱도가 무너지면서 발생했습니다.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총 183명이 그 자리에서 수장됐습니다."
}
},
{
"@type": "Question",
"name": "왜 83년이 지나서야 유해가 발견됐나요?",
"acceptedAnswer": {
"@type": "Answer",
"text": "사고 직후 회사가 2차 붕괴와 침수를 막는다는 이유로 갱도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려 시신 수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정부와 회사가 경위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아 사건 자체가 잊혀진 상태로 방치됐습니다."
}
},
{
"@type": "Question",
"name": "한국에는 어떻게 처음 알려졌나요?",
"acceptedAnswer": {
"@type": "Answer",
"text": "사고 발생 49년 만인 1991년, 야마구치 다케노부라는 일본인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찾아주려는 목적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한국 사회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
},
{
"@type": "Question",
"name": "2025년에 발견된 유골은 어떤 상태였나요?",
"acceptedAnswer": {
"@type": "Answer",
"text": "2025년 8월 25일 수심 약 43미터 바다 밑에서 대퇴골로 추정되는 뼈 조각이 처음 발견됐고, 다음 날인 8월 26일에는 두개골도 함께 발견됐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검게 변한 상태였습니다."
}
},
{
"@type": "Question",
"name": "지금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나요?",
"acceptedAnswer": {
"@type": "Answer",
"text": "2026년 2월 추가 잠수 조사 중 대만 출신 잠수사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안전 문제가 불거졌고, 이후 유해 발굴 일정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한일 정부는 발견된 유골에 대한 DNA 감정 협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