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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명 수몰, 136명이 조선인…83년 만의 '검은 뼈'

직답 요약: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조세이(장생) 해저 탄광에서 갱도 천장이 무너지며 183명이 수몰됐고, 이 중 136명(약 74%)이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였습니다.
사고 직후 회사가 갱구를 콘크리트로 막아버려 시신 수습은 시도조차 되지 못했고, 진상은 반세기 가까이 묻혀 있었어요.
1991년 일본인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의 조사로 사건이 다시 조명됐고, 2024년 갱구가 재개방된 뒤 2025년 수심 43미터 지점에서 유골이 처음 발견되면서 83년 만에 진실의 일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한 수습과 신원 확인, 고국 송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에요.

방송 정보 · 채널: SBS · 방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6년 9월 10일 방송분 · 편명: 검은 뼈 - 49년 만에 전해진 부고 · 출연: 박태환, 김종서, 변요한(리스너)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가 이 사건을 '검은 뼈 - 49년 만에 전해진 부고' 편으로 다뤘어요.
사고가 난 곳은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조세이(장생) 탄광이었습니다.
이 탄광은 갱도가 해저까지 뻗어 있는 해저 탄광이었어요.
노동자들은 좁은 갱도 안에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채탄 작업을 했습니다.
1939년부터 1941년 사이에만 이곳으로 동원된 조선인이 1258명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문제는 탄광이 당시 일본의 법정 안전 기준보다 훨씬 얕은 해저 지점까지 무리하게 굴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1942년 2월 3일 오전 6시쯤, 해저 갱도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순식간에 밀려들었어요.
갱도 안에 있던 노동자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갇혔습니다.

사고로 숨진 183명 중 136명(약 74%)이 조선인 노동자였고, 이들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회사는 왜 갱구를 막아버렸나요
사고 직후 회사 측은 갱구, 즉 갱도의 입구를 콘크리트로 막아버렸어요.
추가 붕괴나 침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희생자들의 시신 수습은 시도조차 되지 못했어요.
183명은 그렇게 83년 가까이 차가운 바닷속에 남겨졌습니다.
유족들에게는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어요.
사고는 오랫동안 공식 기록 밖에서 잊혀 있었습니다.

49년 만에 도착한 부고, 그리고 2024~2025년의 변화
이 사건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뜻밖의 편지 한 통이었어요.
1991년, 일본인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가 희생자들의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사고의 전모와 조선인 희생자 명단 일부가 다시 조명받게 됐어요.
유족 입장에서는 사고 발생으로부터 무려 49년이 지나서야 가족의 죽음을 제대로 확인받은 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채 반세기를 살았습니다. 이제라도 이름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눈물이 났어요."

지역 시민들과 유족, 연구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2024년 가을 갱구 발굴 작업이 진행됐어요.
2024년 10월, 탄광 입구에서는 "갱구가 열렸다, 82년의 어둠에 빛을"이라는 이름의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발굴 작업을 계기로 한일 합동 수중조사가 이어졌어요.
2025년에는 수심 43미터 지점에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처음으로 발견됐습니다.
83년 만에 나온, 검게 변한 뼈 조각이었어요.
수색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잠수사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수색은 한때 잠정 중단되기도 했어요.

사고 전후,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아래 표로 사고 발생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한눈에 정리해 드려요.


시점 사건 의미


1942년 2월 해저 갱도 붕괴, 183명 사망(조선인 136명) 사고 발생, 회사가 갱구 봉쇄
1991년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의 조사 시작 49년 만에 조선인 희생자 존재가 재조명
2024년 10월 갱구 발굴, 추모 행사 개최 82년 만에 갱구 재개방
2025년 수심 43m 지점 유골 최초 발견 83년 만의 유해 확인, 송환 논의 시작

지금은 어디까지 왔나요
2025년 유골 발견 이후에도 완전한 수습과 신원 확인, 고국 송환까지는 갈 길이 남아 있어요.
수중 작업의 위험성과 비용 문제로 조사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남은 희생자들을 반드시 찾아 고국으로 모셔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방송에서 리스너로 참여한 박태환 씨도 남은 유골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출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결론: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가 궁금하시다면, 1942년 사고와 은폐, 1991년 진상 재조명, 2024~2025년 갱구 발굴과 유골 발견으로 이어지는 시간순 흐름을 함께 따라가며 이해하시길 권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