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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만에 떠오른 '검은 뼈'…조세이 탄광 183명은 왜 못 나왔나

조세이 탄광 사고에서 183명이 끝내 못 나온 이유는 두 가지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해저 갱도가 무너지며 바닷물이 밀려들어 그 자리에서 전원이 숨졌습니다.
그런데 사고 직후 일본 당국과 광산 측은 시신을 꺼내는 대신 붕괴 지점을 그대로 막아버렸습니다.
그 결과 83년이 지난 2025년에야 잠수 조사팀이 처음으로 유해 일부를 확인했습니다.

방송정보 — 채널: SBS /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 코너: 실화 사건 스토리텔링 / 형식: MC와 게스트가 실제 사건을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해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사고 개요 — 언제, 어디서, 몇 명이
조세이 탄광은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밑을 파고 들어간 해저 탄광이었습니다.
갱도가 해저면에서 그리 깊지 않은 구간까지 뻗어 있어서, 천장이 얇아지는 곳에서는 늘 붕괴 위험이 있었습니다.
1942년 2월 3일, 그 얇은 천장 한 곳이 결국 무너졌습니다.
바닷물은 순식간에 갱도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좁고 긴 통로 안에 있던 노동자들은 도망칠 방향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확인되지 않았고, 희생자는 총 183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사고로 숨진 183명 가운데 약 136명, 전체 희생자의 74%가량이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조선인 노동자들이 그 위험한 갱도에 있었나
1930~40년대 일본은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해 탄광, 조선소, 군수공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조선에서 대규모로 끌어왔습니다.
조세이 탄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고향에서 모집이나 알선이라는 이름으로 배를 타고 건너온 조선인들은 위험도가 가장 높은 해저 갱도 작업에 다수 배치되었습니다.
같은 작업장에서도 일본인 노동자보다 더 위험한 구역에 자주 투입됐다는 증언이 이후 조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왔습니다.

일제강점기 탄광·군수시설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는 수십만 명 규모로 추정되며, 조세이 탄광 사고는 그중에서도 단일 사고 인명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사고 당일, 갱도 안에서 벌어진 일
사고 당일 새벽조로 갱도에 들어간 이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굉음과 함께 갱도 벽 틈으로 바닷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갱도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습니다.
물은 사람보다 빨랐고, 출구는 사실상 하나뿐이었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갱도 대부분이 바닷물로 가득 찬 뒤였습니다.

83년간 왜 유해를 꺼내지 못했나
사고 직후 일본 당국과 광산 측은 시신 수습 대신 붕괴 지점을 막는 방식으로 사고를 마무리했습니다.
바닷속 깊이 잠긴 갱도에 다시 들어가 유해를 수습하는 작업은 기술적으로도, 비용 면에서도 오랫동안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꿔 놓은 건 일본 현지 시민모임의 끈질긴 활동이었습니다.
우베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민들이 모임을 꾸려 매년 추모식을 열어 왔습니다.
이들은 일본 정부와 광산 측에 진상규명과 유골 발굴을 꾸준히 요구했습니다.
한국의 유가족들도 여러 차례 현지를 방문해 진상조사를 촉구했습니다.
그럼에도 실제 갱도 진입 조사로 이어지기까지는 다시 수십 년이 더 걸렸습니다.
"이 갱도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 달라고, 매년 이 자리에서 말해 왔습니다." — 우베 지역 추모모임 관계자

2025년, '검은 뼈'로 돌아오다
2025년, 잠수 조사팀이 마침내 침수된 갱도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바닷물과 갱도 안 퇴적물 속에서 오랜 시간 검게 변한 사람의 뼈가 확인되었습니다.
1942년 사고 이후 83년 만에 처음 나온 유해였습니다.
"83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제라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다행입니다." — 유가족
수습된 유해는 정밀 감정을 거쳐 신원과 국적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 발굴은 단순한 유해 수습을 넘어, 강제동원 피해를 뒷받침하는 물리적 증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지금도 바다에 남아 있는 흔적 — '피야' 두 개의 굴뚝
우베 앞바다에는 지금도 원통형 구조물 두 개가 물 위로 솟아 있습니다.
현지에서 '피야'라고 불리는 이 구조물은 원래 조세이 탄광의 통기(환기)용 수직 갱도였습니다.
썰물 때만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이 구조물은, 83년 전 그날의 사고를 기억하는 사실상 유일한 현장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추모모임은 이 자리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사고의 경위를 안내하는 활동도 함께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눈에 보는 1942년과 2025년 비교

항목 1942년 사고 당시 2025년 현재

갱도 상태 붕괴 직후 바닷물로 침수 여전히 침수 상태, 부분 잠수 조사만 가능
희생자 유해 수습되지 못한 채 갱도 안에 남음 일부 유해 최초 수습, 감정 절차 진행
진상규명 공식 조사·발표 없음 시민모임·유가족 활동을 계기로 잠수 조사 성사
현장 흔적 사고 직후 갱도 폐쇄 '피야' 구조물이 바다 위에 남아 매년 추모식 장소로 쓰임

꼬꼬무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
꼬꼬무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근현대사 사건을 실화 스토리텔링으로 조명해 온 프로그램입니다.
조세이 탄광 사고는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강제동원 피해 사례였습니다.
83년 만의 유골 발굴이라는 시의성 있는 사건이 맞물리면서, 방송을 통해 다시 한번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결론: 조세이 탄광 사고는 1942년 해저 갱도 붕괴로 183명이 숨진 참사이며, 희생자의 약 74%가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였다는 점, 그리고 83년 만인 2025년에야 유해 일부가 처음 수습되었다는 점이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방송을 보고 배경이 궁금해졌다면, 위 표로 1942년과 2025년의 변화를 먼저 비교해 보고 타임라인 순서로 다시 읽어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출처: SBS 방송 내용, 우베 지역 시민모임 및 유가족 증언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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