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해저 갱도가 무너지며 183명이 그 자리에서 숨진 사건입니다.
희생자 183명 중 136명이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였고, 이들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30대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일본은 사고 이후 시신을 수습하지 않은 채 갱도 입구를 막았고, 바다 위로 솟은 배기구 두 개만이 82년 넘게 그 존재를 증언해 왔습니다.
2025년 8월부터 시민단체와 한국인 다이버들의 잠수 조사로 유골 수습이 시작됐지만, 신원 확인과 완전한 수습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방송 정보 — SBS 예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2026년 9월 10일 목요일 밤 10시 20분 방송분입니다.
고정 이야기꾼 장도연·장성규·장현성이 진행했고, 이야기 손님으로 박태환·김종서·변요한이 출연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다뤘습니다.
해저 탄광, 위험을 무릅쓴 채굴이 부른 예고된 참사
조세이 탄광(長生炭鉱)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해저에 뚫린 석탄 갱도였습니다.
갱도는 해수면 아래 약 37미터 지점까지 파여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의 법정 안전 기준보다도 얕은 깊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다 밑을 파고드는 채굴은 원래 위험도가 높아 일본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던 작업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채웠습니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씩 갱도 안에서 노동해야 했습니다.
사고 전부터 갱도 곳곳에서 바닷물이 새어 들어오는 등 위험 신호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고, 이는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1942년 2월 3일 오전, 바닷물이 갱도를 삼키다
사고 당일 오전, 갱도 천장이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좁고 긴 해저 갱도 안에 있던 노동자들은 빠져나올 통로를 찾지 못했습니다.
순식간에 갱도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183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중 136명이 조선인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10대 후반에서 20~30대의 젊은이였습니다.
희생자 183명 중 136명(약 74%)이 강제동원된 조선인이었고, 그중 80명이 30세 이하, 4명은 10대 소년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방송에서는 생존자와 유가족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습니다.
가족들은 사고 소식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구조도, 수습도 없이 그대로 봉인된 탄광
사고 직후에도 별다른 구조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측은 시신을 수습하지 않은 채 갱도 입구를 그대로 막아버렸습니다.
이후 조세이 탄광은 오랫동안 잊힌 존재가 됐습니다.
다만 탄광 내부 환기에 쓰였던 원통형 배기구 두 개만은 바다 위로 계속 솟아 있었습니다.
현지에서는 이를 '피야(ピーヤ)'라고 불렀습니다.
이 두 개의 배기구는 오랫동안 옛 조세이 탄광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유일한 흔적이었습니다.
82년의 침묵을 깬 사람들
사고 이후 수십 년간 조세이 탄광은 공식적으로 조사되거나 추모되지 못했습니다.
변화는 일본 현지 시민들에게서 시작됐습니다.
'조세이 탄광 순난자를 기억하는 모임' 등 일본 시민단체가 크라우드펀딩으로 조사 비용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옛 갱도의 정확한 위치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이버를 투입해 잠수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2025년 8월, 한국인 다이버들이 수심 40미터가 넘는 갱도 안으로 들어가 유골을 처음으로 수습했습니다.
오랜 세월 석탄, 바닷물과 뒤섞여 있던 유골은 검게 변색된 상태였습니다.
이 '검은 뼈'는 82년 넘게 바닷속에 방치됐던 참사의 실체를 눈앞에 드러낸 증거였습니다.
"유골이라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 유골 수습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발굴 작업은 지금도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2026년 2월에도 잠수 조사를 통해 유골 일부가 추가로 수습됐습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자원봉사로 참여한 외국인 다이버가 저산소증으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습니다.
수습된 유골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도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방송에 출연한 박태환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골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제는 민간의 노력을 넘어 한국과 일본 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1942년 사고 당시 vs 2025~2026년 현재, 무엇이 달라졌나
구분 1942년 사고 당시 2025~2026년 현재
탄광 상태 수몰 직후 입구 폐쇄, 시신 미수습 일부 구간 잠수 조사 진행 중
희생자 처리 공식 구조·수습 작업 없음 시민단체 주도로 유골 일부 수습 시작
존재를 증언하는 흔적 바다 위 배기구 '피야' 두 개뿐 수습된 '검은 뼈'가 실체적 증거로 확인됨
조사 주체 없음(방치) 일본 시민단체 + 한국인 다이버 협력
남은 과제 - 신원 확인, 한·일 정부 차원의 지원 체계 마련
결론: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강제동원의 비극이 어떻게 방치되고 잊혀왔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지금도 진행 중인 문제입니다.
이 사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시민단체의 유골 수습 소식을 계속 지켜보시고,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과 관련된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 나가시길 권합니다.
출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6년 9월 10일 방송분 관련 상품 일본의 논점 2026-2027:미래 생존 시나리오, 여의도책방, 오마에 겐이치 — 22,500원 (로켓배송) 신사임당 한국 역사 장편 소설 책 추천 — 13,500원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