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답 요약: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해저 탄광 조세이(長生)탄광에서 갱도 천장이 무너져 바닷물이 밀려들었고, 조선인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그대로 수몰됐습니다.
사고 후 83년이 지난 2025년 8월에야 처음으로 유골이 수습되기 시작했고, 2026년 2월에는 추가 유해도 발견됐습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가 이 사건을 다뤘고, 배우 변요한은 "양심, 사명감, 부끄러움을 아는 일, 그리고 일본 시민들의 사죄의 말까지, 모두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아래에서 사건의 전말과 방송 내용, 그리고 지금 이 사건이 왜 다시 중요한지를 정리해 드릴게요.
방송 정보
채널: SBS
프로그램·코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방영일: 2026년 9월 10일
출연: 배우 변요한, 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가수 김종서 (이야기꾼) / 장현성·장도연 (MC)
다룬 사건: 1942년 조세이(長生) 탄광 수몰 참사
조세이 탄광, 어떤 곳이었나요
조세이 탄광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밑을 파고 들어간 해저 탄광이었습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조선 청년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채탄 노동에 투입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좁은 갱도 안에서 허리도 펴지 못한 채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12시간씩 2교대로 하루 종일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42년 6월 기준 이 탄광에 동원된 조선인은 약 1,258명에 달했습니다.
이 중 66%가량이 경상북도 출신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숙소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도리시마리'라 불린 감시자들이 출입을 통제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습니다.
1942년 2월 3일,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2년 2월 3일, 갱도 천장이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그대로 갱도 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당시 갱도는 해수면 아래 약 37m까지 파고든 상태였습니다.
이는 일본의 법정 채굴 안전 기준을 넘어선 무리한 굴착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갱도 안에 있던 노동자들은 빠져나올 틈도 없이 그대로 갇혔습니다.
이 사고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등 총 18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등 총 183명이 사망했습니다. 갱도는 해수면 아래 약 37m까지 뚫려 있었는데, 이는 일본의 법정 채굴 안전 기준을 초과한 수준이었습니다. 사고 발생부터 첫 유골 수습까지는 무려 83년이 걸렸습니다.
83년 동안 묻혀 있던 진실, 어떻게 드러났나요
사고 직후 일본 정부와 탄광 측은 정확한 사망자 수와 원인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처음 알려진 건 1991년이었습니다.
야마구치 다케노부라는 일본인이 희생자들의 본명을 찾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오면서부터였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실제 유골 수습은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5년 8월, 사고 발생 83년 만에 처음으로 갱도 안에서 검게 변색된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수심 43m의 차갑고 어두운 해저 갱도에서, 한국인 다이버들이 직접 손으로 유골을 수습했습니다.
이후 수색 작업 중 다이버 한 명이 안타깝게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로 발굴 작업이 한동안 잠정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2026년 2월에는 추가로 희생자 유해가 수습됐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변요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꼬꼬무에서 변요한은 사건의 전모를 접한 뒤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방송에서 이렇게 소감을 전했습니다.
"양심, 사명감, 부끄러움을 아는 일, 그리고 일본 시민들의 사죄의 말까지, 모두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발언은 가해국 내부에서도 진상규명과 사죄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짚은 것입니다.
그 사실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함께 출연한 박태환도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하루빨리 남은 유골도 찾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수 김종서 역시 갱도에서 쏟아지는 바닷물 장면을 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바닷물이 마치 돌아가신 분들의 피눈물 같았습니다."
조세이 탄광과 하시마(군함도), 무엇이 다른가요
강제동원 탄광 사건이라고 하면 하시마(군함도)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조세이 탄광은 하시마와 성격이 다른 사건입니다.
아래 표로 두 탄광을 간단히 비교해 봤습니다.
구분 조세이(長生) 탄광 하시마(군함도) 탄광
위치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저 나가사키현 앞바다 섬
주요 사건 1942년 갱도 수몰 사고 강제노동·열악한 생활환경
사망 규모 183명(조선인 136명 포함) 정확한 조선인 사망자 수는 자료마다 편차 있음
세상에 알려진 시점 1991년 편지로 첫 계기, 2025년 유골 첫 발굴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논란으로 재조명
현재 상태 유해 수습·진상규명 진행 중 강제동원 사실 표기 문제로 갈등 지속
이런 비교에서 알 수 있듯, 조세이 탄광 사건은 '다 끝난 과거사'가 아닙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발굴 작업'이라는 점에서 하시마와는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왜 지금 이 사건이 다시 회자되나요
이 사건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유해 발굴·진상규명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83년이 지나서야 처음 유골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방송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이름도 몰랐던 탄광인데, 83년 만에 유골이 나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결론
결론: 조세이 탄광 참사는 83년 전에 끝난 사고가 아니라, 지금도 유해 수습과 진상규명이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 문제입니다.
이 방송을 계기로 사건을 처음 접하셨다면, 관련 자료관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배경을 조금 더 살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단순히 방송 화제성으로만 소비하기보다, 왜 83년이나 지나서야 유골이 나올 수 있었는지를 짚어보는 계기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관련 언론 보도 및 유해 발굴 관련 공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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